아들맘과 딸맘은 정말 다를까요? 온라인에서 흔히 보이는 아들맘·딸맘 이야기를 어린이집 교실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웃으며 읽는 어린이집 현실공감 이야기.

요즘 육아 이야기를 보다 보면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들맘. 딸맘.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아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딸은 말이 빠르다.
아들 키우면 집이 체육관이 된다.
딸 키우면 엄마랑 친구처럼 지낸다.
읽다 보면 묘하게 우리 집 이야기 같은 것도 있고,
"아니, 우리 애는 정반대인데?"
싶은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함께 만나는 어린이집에서는 어떨까요?
교실 문을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AM 9:12 등원 완료
한 아이가 씩씩하게 들어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자동차 영역으로 돌진합니다.
"역시 아들은 자동차지."
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2분 뒤 자동차 주차장을 점령한 사람은 여자아이입니다.
자동차 열두 대를 일렬로 세워놓고 선언합니다.
"여기는 주차장이야."
옆에서 남자아이는 조용히 색연필을 고르고 있습니다.
분홍색.
보라색.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하트를 그립니다.
교사의 첫 번째 깨달음.
교실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예상이 빗나갑니다.
AM 10:03 역할놀이 시작
오늘은 공주 드레스가 인기입니다.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잠시 후 공주는 아기를 돌보지 않습니다.
블록으로 만든 거대한 칼을 들고 공룡을 잡으러 갑니다.
"나는 공주 경찰이야!"
세계관이 상당합니다.
옆에서는 남자아이가 아기인형을 품에 안고 토닥입니다.
"쉬이, 아기 자잖아."
이런 장면을 매일 보다 보면
'남자아이는 이런 놀이, 여자아이는 저런 놀이'
라는 경계선은 생각보다 금방 흐릿해집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성별보다
'지금 내가 재미있는 것'
에 훨씬 충실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이야기는 조금 재미있습니다
하원시간입니다.
오늘 신나게 바깥놀이를 했습니다.
바지는 흙투성이.
양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모래가 들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살짝 긴장합니다.
"오늘 바깥놀이를 정말 신나게 해서 옷에 흙이 조금 묻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응은 성별보다 훨씬 다양한 방향에서 날아옵니다.
"괜찮아요. 놀았으면 됐죠!"
"아이고,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면."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밝은 옷을 입혀 보냈네요."
"이 정도면 생각보다 깨끗한데요?"
그리고 가끔은
"양말이 왜 이쪽으로 돌아가 있죠?"
정밀수사대도 등장합니다.
이쯤 되면 교사는 압니다.
아들맘·딸맘보다 부모님마다 다르다는 것을.
사진에서도 성별보다 강력한 것이 있습니다
키즈노트 사진이 올라갑니다.
부모님의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확대.
우리 아이 발견.
또 확대.
표정 확인.
한 번 더 확대.
뒤쪽에 있는 우리 아이 발견.
이 과정에서는 아들맘도 딸맘도 꽤 평등합니다.
우리 아이가 사진에 예쁘게 나오면 기분이 좋고,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궁금하고,
오늘 친구들과 잘 지냈는지 알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앞에서는 아들맘과 딸맘의 경계가 상당히 희미해집니다.
"그래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지 않나요?"
물론 아이들에게서 다양한 차이는 보입니다.
좋아하는 놀이도 다르고,
활동량도 다르고,
말하는 방식도 다르고,
친구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다릅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오래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 차이를 전부 성별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
조용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뛰고 올라가고 도전하는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역할놀이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있고,
자동차 종류를 줄줄 외우는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친구 앞에서는 말이 많지만 어른 앞에서는 조용한 아이도 있고,
집에서는 천하장사인데 어린이집에서는 세상 신중한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 한 명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특히 위험한 말이 있습니다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여자애들은 원래 그래."
편한 말입니다.
한 문장으로 설명이 끝나니까요.
하지만 그 말이 너무 빨리 등장하면 우리가 놓치는 것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왜 친구를 밀었는지 살펴보기 전에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여자아이가 친구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여자애들은 원래 관계가 복잡해."
라고 정리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진짜 이유는 문장 뒤로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성별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봅니다.
왜 그랬을까?
언제 그런 모습이 나타날까?
무엇을 좋아할까?
친구와 있을 때는 어떨까?
혼자 놀 때는 어떨까?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남자아이', '여자아이'보다 먼저 ○○이라는 아이 한 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아들맘·딸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
사실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도 있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우리 집만 이런가?"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우리 아들도 그래요."
"우리 딸도 똑같아요."
라고 하면 괜히 반갑습니다.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가볍게 웃고 공감하는 이야기로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그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남자아이는 반드시 이렇다'
'여자아이는 당연히 저렇다'
라는 아이 사용설명서가 되지만 않으면 됩니다.
어린이집에서 보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아들맘.
딸맘.
교실에서는 조금 다르게 부르고 싶어집니다.
자동차에 진심인 아이의 엄마.
공룡을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
그림을 하루 종일 그리는 아이의 엄마.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의 아빠.
등원할 때는 울지만 3분 뒤 누구보다 신나게 노는 아이의 엄마.
아이를 조금 더 알고 나면 성별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깁니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웃는 순간,
속상해하는 순간,
친구에게 다가가는 방법.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매일 여러 아이를 만나며 내리는 결론은 꽤 단순합니다.
아들맘과 딸맘의 차이보다 아이와 아이의 차이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오늘도 자동차를 몰던 공주는 공룡을 잡으러 출동하고,
아기인형을 재우던 꼬마 아빠는 친구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쉿. 아기 자잖아."
그리고 교사는 생각합니다.
그래.
이래서 아이들을 성별 두 칸에 넣기엔 칸이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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